링린이 여러분 링-하! 김인페 입니다.

며칠 전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를 씹어먹었죠. 무려 4관왕이라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감히 우릴 모욕해? 4관왕이나 해버렷!” 오스카 휩쓴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 EPA(ETIENNE LAURENT)

심지어 오스카를 로컬 영화 영화제잖아 ㅋ 라는 디스 아닌 디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쾌거. 그야말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일 같습니다. 경계를 허물어 버렸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경계를 허물어…? 수상…? 레전설…? 역사에 길이길이…

그러다 번뜩이는 아이템이 제 머리를 스쳐버리고 만 것이죠. 이 모든 것에 딱 들어 맞는 녀석은 바로…

롤랜드(Roland)가 내놓은 희대의 드럼머신 TR-808!!!!

40년 전 홀연히 세상에 나와 음악의 역사를 바꿔놓고, 최근 NAMM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바로 그 TR-808!!

봉준호 감독의 이번 오스카 수상과 딱 오버랩 되는 거 아니겠어요?

좋아 자연스러웠어!

그리하여 오늘의 포스팅은 TR-808, 줄여서 808을 찬찬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808! 너로 정했어!!


오늘의 주인공 Roland TR-808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808. 팝이나, 특히 힙합 팬들에게는 제법 친숙한 이름일 수 있습니다. 워낙 특징적인 사운드도 사운드지만 많은 아티스트들의 가사에도 자주 등장하죠.

Got some pretty good beats on this 808 CD

Frank Ocean, “Swim Good”

I’m back with the 808 ’cause I’m bossy

Kelis feat. Too Short, “Bossy”

Do I make your heart beat like an 808 drum?

Ke$ha, “Your Love is My Drug”

이렇듯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808. 그러나 도대체 808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분들이 더 많은 게 현실! 그도 그럴 것이 TR-808이라고만 하면 도무지 뭔지 알 수가 없죠.

808이 뭔지 아무도 안 알려줘…

이제 걱정은 노노… 오늘부로 당신도 808을 아는 핵인싸로 만들어드릴 테니 본 포스팅을 차분히 퐐로퐐로미

우선 808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가 되겠습니다. 일본의 악기사 롤랜드에서 개발한 드럼머신으로 타다오 키쿠모토라는 양반의 지휘아래 탄생했습니다.

당시 롤랜드 수석 엔지니어 타다오 키쿠모토와 프로토타입 TR-808 ※출처: Roland 공식 홈페이지

타다오 아저씨의 지휘 아래 개발팀에게 주어진 미션은 바로

최대로 리얼한 드럼 소리를 구현할 것!

롤랜드 사장님

간단한 듯 하면서도 너무나 어려운 요구! 그도 그럴 것이 샘플된 소스를 재생하는 방식은 가격이 너무 비싸서 탈락했고, 고민 끝에 아날로그 신서시스(analog synthesis) 방식을 채택하게 됩니다. 훗날 이것이 신의 한수가 될 거란 건 아무도 모른채 말이죠…

그렇게 세상에 첫 선을 보이게 된 808. Rhythm Composer라는 이름답게 16개의 알록달록한 버튼을 통해 리듬을 만들어 재생할 수 있었죠. 드러머가 아니어도 드럼 비트를 만들 수 있다니 개이득!

이렇게 일본 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Yellow Magic Orchestra – 류이치 사카모토 형님이 왕년에 활동한 밴드 – 도 애용하면서 대세가 되나??!!! 했는데…

그랬는데…

출시 후 808은 그야말로 폭ㅋ망ㅋ 합니다.

그 이유로는, 우선 리얼 드럼 소리랑 너무 다르다는 것!

원래 개발 목표와는 다르게 완성된 808은 굉장히 독특한 사운드를 냈어요. 그런 이질감이 우선 거부감을 야기했고, 진지하게 사용하긴 어려운 그저 로봇 소리 내는 장난감 정도로 치부되었죠. 게다가 일부 드러머들 사이에서는 드럼머신이 보급될 수록 자기들 밥그릇이 사라진다며 난리법석이었답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82년도에 경쟁자인 LinnDrum LM-1이 등장하며 아날로그 신서시스가 아닌 샘플 기반의 드럼머신으로 트렌드를 완전히 바꿔버리며 그야말로 808 관뚜껑을 닫아버립니다.

그렇게 12,000대 만을 생산하며 808은 역사의 뒤안길로…

….

헤헤 실직하면 닭이나 튀겨야 하나…

사라지는 듯 하였으나!

그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비운의 악기로 평가 받으며 하나둘씩 중고 악기샵에 808이 나오게 되는데, 돈은 없지만 대담하고, 기존 팝의 공식을 따르려 하지 않는 용감한 젊은 프로듀서들이 이 악기를 찾기 시작한 겁니다.

앞서 언급한 LinnDrum이 $5,000에 거래되었다면 808은 $1,200만 있어도 사용이 가능했고, 훨씬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그 얘기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이도 비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요.

거기다 내장된 16 아날로그 사운드가 리얼 드럼 소리와 달랐기 때문에 그 매력에 흠뻑 매료되기 시작한 거죠. 어딘지 미래적인 사운드가 단점에서 장점으로 탈바꿈한 것! 특히 808의 kick과 sub는 충만한 베이스 때문에 당시 스피커들을 날려버릴 정도였어요! (실제로 터짐)

그럼 일찍이 808의 매력을 알아본 이들을 만나볼까요?


마빈 게이(Marvin Gaye)

모타운, 소울의 아이콘 마빈 게이!

그러나 소속사였던 모타운과의 갈등, 두 번째 결혼의 파경, 약물 중독…

누구라도 이런 악재가 연달아 찾아오면 힘들겠죠?

그렇게 깊은 우울증에 시달려 미국을 떠나 벨기에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리던 마빈 게이는 당시 다른 뮤지션들과 만나는 것도 버거워 했다고 해요. 그 때 스튜디오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808. 사람 드러머가 아니어도 리듬을 짤 수 있다니? 그에게는 신이 내려준 선물 같았겠죠?

그렇게 재기의 밑거름을 만들어준 808. 결국 그래미 어워드를 안겨줍니다. 바로 “Sexual Healing” 덕분이죠!

맛깔나는 클랩소리와 통통 튀는 탐 소리!

바로 808의 아이코닉한 사운드가 인트로에서부터 리스너들의 귀를 사로 잡습니다.

그렇게 1년만인 82년도에 마빈 게이는 완벽한 재기를 합니다. 상업적 흥행과 평단의 극찬까지 받았으니 더할나위 없었죠. 그저 장난감으로 치부되던 808도 진지한 악기로써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도 했어요!


아서 베이커(Arthur Baker) &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

82년도 여름, 미국 전역의 스피커 파괴범이 있었습니다. 바로 “Planet Rock”이라는 노래죠. 이 곡은 프로듀서 아서 베이커와 뮤지션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의 합작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808의 미친 존재감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곡입니다.

당시 뉴욕에서 소위 ‘안 팔리는 디제이’들이던 아서 베이커와 아프리카 밤바타. 그러나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 kraftwerk를 향한 애정을 살려 작업한 “Planet Rock”은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이 되었죠. 녹음 당시만 해도 808이 없어 지역지 광고에 실린 드럼머신 세션 연주자를 20 달러에 고용해서 썼다고 하네요. (크흡 ㅠㅠ)

시작은 짠내났지만 이들 덕분에 음악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힙합과, 일렉트로, 테크노의 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죠. 심지어 “Planet Rock”이 발매됐을 때는 힙합이란 용어가 나오기도 전이라 펑크(Funk)로 장르가 분류되었다고 해요.

이러한 맥락 덕에 이후 힙합과 808의 찰떡궁합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아서 베이커는 그날 녹음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와이프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여보, 오늘 우린 음악의 역사를 다시 썼어

808 떡상과 함께한 아서 베이커

자기도 뭔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걸 만들어냈다고. 그럴만하죠? 힙합이 있기도 전에 힙합을 만들어 냈으니.


릭 루빈(Rick Rubin)

젊고 패기 있는 베드룸 프로듀서(Bedroom Producer) 중 808과 가장 성공적으로 엮인 이가 바로 릭 루빈입니다. 아서 베이커의 경우처럼 뉴욕에 열정 하나만으로 버티던 그는 뛰어난 사교성을 바탕으로 84년도에 재지 제이(Jazzy Jay), 티 라 록(T La Rock)과 함께 “It’s Yours”라는 노래를 발표하게 됩니다.

808 + 랩 = 성공적 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거 같죠?

본인 입으로 음악 지식은 전무했다던 릭 루빈은 그저 패기와 808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데뷔 작의 성공 이후 수많은 래퍼들과 작업을 하며 NY 힙합의 부흥을 이끈 릭! RUN DMC, Beastie Boys, LL Cool J, Public Enemy까지. 레전드의 뒤에는 릭 루빈이, 그리고 그의 808이 함께였습니다!

특히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의 86년도 플래티넘 기록을 세운 데뷔 앨범 “Licensed to III”에서 808의 리듬은 종횡무진 합니다!

그야말로 랩과 808의 만남은 물 만난 물괴기! 피카츄 만난 지우! 김태호 만난 유산슬!

유느님이 그렇다고 합니다


이렇게 떡상테크를 탄 808

그간 808이 장난감? 퇴물? 관짝행? 이라고 디스한 이들은 …

와장창…

역주행 성공! 히트곡 제조기로 탈바꿈한 808!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거죠.

모두에게 열려 있고, 어디에나 쓸 수 있다

TR-808

808은 누구나, 어디든 씹가능

808의 등장은 샘플을 루핑하기 위한 고단한 편집과정을 생략해도 되었고, 라이브 드러머도 필수적으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808에 담긴 소리 그대로 트위킹만 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음악이 탄생했기에 기존 음악을 하기 위한 진입장벽이 월등히 낮아진 거죠.

이런 배경 덕분에 힙합은 물론이고 마이애미 베이스(Miami Bass),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 그리고 디트로이트의 테크노(Techno) 음악까지 탄생하게 된 거죠. 지금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듣는 이 음악들이 808이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않을지도 몰라요.

시대의 아이콘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는 앨범 하나를 통으로 808만 사용하기도 했죠. 이쯤에서 들어보는 808의 클래식 “Love Lockdown”

808로 심장 박동 소리를 구현한 것은 아주 절묘한 메타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국 국민밴드 블러(Blur)의 프론트 맨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은 808 덕분에 베이스와 스네어의 관계가 재설정되었다고 평했죠. 앰비언트의 조상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선생님도, 50년대 음악의 믹스가 멜로디 중심으로 되어있었던 반면 현대로 넘어올 수록 점점 더 리듬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평한 것만 봐도, 808과 같은 드럼머신이 음악에 기여한 영향은 지대합니다.

90년대 남부 힙합의 대명사 릴 존(Lil Jon)의 경우 808 클랩 성애자로 불리기도…

특히 릴 존의 경우 어셔(Usher)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금기시 되어왔던 장르 간의 장벽을 허물어버렸죠. R&B 싱어와 힙합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 바로 808!

808이 세상에 나온지 그렇게 40년이 지났지만 808은 여전히 만인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힙합과의 긴 동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뿐만 아니라 팝 음악 전반에 걸쳐 사랑받고 있죠. Jamie XX“Gosh” 속에서는 808이 힙합에서 쓰이던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내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팝의 대세! 포스트 말로네(Post Malone)도 어김없이 808을 집어들었죠.

힙스터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프로듀서 토로 이 모아(Toro Y Moi)“Fading”에서도 808의 짙은 향취를 느낄 수 있어요.

이제는 단순히 음악과 악기의 관계를 넘어서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808과 유스(youth), 스트릿 문화의 상관관계를 잘 표현한 Adidas 캠페인 영상. 808의 나이와 무색하게 여전히 젊음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8월 8일은 심지어 808데이로 전세계 모두가 대동단결한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다큐멘터리 주인공도 해먹으신 808…

Adidas의 808 트리뷰트 모델

Puma의 808 한정 모델!

패션계의 러브콜도 당연히 있었겠죠? 그야말로 경계를 허물어 버린 808.

세상에 단 12,000대만 생산되고 2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음에도 여전히 건재한 이 악기의 매력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808이라는 장르 자체를 만들어냈다고 해야할까요?

이쯤되면 한 편의 영화 같은 808의 스토리에 매료되고, 사운드에 다시 한 번 매료되었을 링린이들!

그러나 막상 TR-808은 어떻게 구하지? 라는 생각이 드실거에요.

? 1가구 1 808은 기본 아입니까?

오리지널 모델은 그 희소성 때문에 잘 만나보기 어렵고, 개중에서 관리가 잘 된 애는 더더욱 희귀한데다 그 가격도 천문학적이라 감히 넘볼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멸종되었다고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TR-808의 친자식!

롤랜드에서 내놓은 TR-08 있으니 말이죠!

롤랜드 부티크(Roland Boutique)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클래식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하여 발매된 만큼

포터블하고 컴팩트 하면서도 808의 오리지널리티를 잘 담아냈습니다.

Ringo TV에서도 일찌감치 리뷰를 찍었죠… 테큰호진 젊은 것 보소…

여러 복각들이 있겠습니다만, 역시 원조 맛집에서 내놓은 게 가장 믿음직하겠죠? 과거 TR-808이 그러했듯, TR-08로 시대를 뛰어넘는 영감을 얻어가 보셔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808…

마지막은 아재갬성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808의 만남 “I Wanna Dance With Somebody” 투척!

씨유 어게인!